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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의 오늘생각] 이효석의 희곡 ‘역사’는 무엇을 말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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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0회 작성일 25-11-0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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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은 강원도 평창 사람,산골에서 자랐지만 아주 명민한 두뇌와 섬세하고도 풍부한 감성을 함께 지닌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에 그는 시를 쓰고,영문 소설을 번역하고, 직접 쓴소설을 발표했다.

최근에 밝혀지기로는 만돌린을 연주하는 동아리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프레데릭쇼팽의 피아노곡을 연주하기도 했다는 그는‘시궁창’현실을, 그리고 문학을 음악적인 순수 지향에 접합시킨 독특한 작가였다.

 

학창시절에 그는 마르크시즘도 섭렵해서1928년7월‘조선지광’이라는잡지에 도시에서 궁핍한 삶을 살아가는 빈민들을 그린 작품‘도시와 유령’을 발표했고,낭만적인 경향파의 감수성을 보여주는 창작집‘노령근해’(동지사, 1931)를 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회파적 지향이 이효석 본래의 자연주의적 기질을 완전히 억압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대학 시절, 주로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쓴아일랜드의 극작가 존 밀링턴 싱에 관한 논문을 쓴 그는 토머스 하디나D.H.로렌스 같은‘사실적’자연주의와의 깊은 교감을 추구했다.그는 인간의 자연적 본성은 결코 어둠이나‘죄악’에 있지 않다고생각했고,오히려 삶을 삶답게 만들지 못하는 요인은 부조리한 사회에 있다고 여겼다.자연적 존재로서 사랑하고 인연을 이루고 생명을 이어가는 존재를 그린 작품이 바로‘메밀꽃 필 무렵’(조광, 1936.10)이었다.

 

알려지지 않은 이효석의 문제작으로희곡 형식의‘역사’라는 작품이 있다.이를 발표할 때는 일제의 사상적·현실적 억압이 극심해지던1939년12월,그는‘문장’지에 이 고뇌어린 작품을 발표한다.이 작품의 무대는 바야흐로 예수가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는 기적을 행하고 십자가형을 받기 며칠 전이다.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는 집에 잔칫상을 차리고 예수를‘초대’한다.

 

이때‘토머스’라는 가공의 인물이 등장한다.

토머스는이른바‘열심당(젤롯)’의 열혈 당원으로 마리아를 깊이 사랑하는 청년이다.

그러나 마리아는원수를 사랑할 것이며 자기를 박해한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신 예수의 가르침을 떠받든다.어찌하여 예수는“눈은 눈으로,이는 이로 갚으라”는 논리를 버리고“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하셨단 말인가.

 

그러나 효석이 제시한‘역사’의 무대에는 토머스와 예수의서로 다른 두 길 외에 또 하나의 길이 있다.그것은 민족의 운명이야 어찌 되든 자신의 이득만을 쫓아 행위하는 유다와 같은 자들의 길이다.

 

사회라는 집합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의 역사에서 효석은 그야말로 원형적인 세 가지의 인간형을 발견했다.이 세 개의 인간형은 역사가 가파른 굴곡을 그리는 국면에서 더욱 극적으로 나타나는 듯한데, 1939년 같은 해가 바로 그러한 시기였다.

 

그렇다면 도처에서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고, 겉으로 보이는 권력을 따라 논리를 꾸며대고, ‘민주주의’의 사도라도 되는 듯 행세하는 이들이 출몰하는 이 시대는 또 하나의 예수·열심당원·유다의 시대가 아니고 무엇이랴.

 

효석은 인간의 자연적 본성을 사랑하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기 시대의 고통스러운 혼란을 차갑게 응시하고 있었다.

 

이러한 효석 작가를 기리는 강원도 평창 봉평의 ‘평창 효석 문화제’,곧‘메밀꽃 축제’가 며칠 앞이다.

 

시대가 이렇듯 어둡고 혼란스럽건만 축제의 가을은 무심하기만 하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시인 [스카이 데일리, 입력 2025-09-04 00: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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