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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같은 삶 - 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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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18회 작성일 19-04-1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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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같은 삶 - 산문으로 보는 세상 -



  바야흐로 가을이 찾아들었다. 자연의 순행은 신비롭다. 그렇게 무덥던 나날도 끝내는 가고 만다. 한가위 가까우면 더위는 불현 듯 한풀 꺽이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감돌게 된다. 햇빛은 대낮인데도 석양빛처럼 녹슨다. 우리 눈빛은 이 녹슨 햇빛 사이로 먼 곳을 바라본다.
  무엇을 바라보는 것인가. 우리는 왜 가을이 되면 저절로 그리운 사람들이 되는가. 그것은 향수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를 향한 짙은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지금 이곳에 살고 있지만 본래 이곳에 살던 사람이 아니다. 가늘어진 눈이 바라보는 곳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바로 그곳, 우리가 왔던 곳, 우리가 가야할 곳, 그곳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본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의 삶에 향수가 깃들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향수란 그리움, 가슴 깊은 그리움이다. 그것은 근원을 향한 그리움, 우리 존재의 본질을 향한 그리움이다. 그것은 우리가 누리는 생명의 일시성을 자각하면서 우리가 떠나왔고 또 향해가는 곳을 향한 그리움이다. 삶에 대한 애착만큼이나 근원에 대한 향수 또한 끈질긴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삶 속에 향수를 간직할 때 우리는 비록 우리의 삶이 육체와 물질에 얽매여 있다 할지라도 그것의 속박 안에 머무르지 않고 왕양한 마음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지금 이곳에서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육체며 물질의 힘이 한시적임을, 근원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은 너무나 잘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학사 속에서 예를 들어 보면 작가 이효석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1907년에 태어나 1942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불과 36세의 나이로 요절한 작가다. 그런 이효석이 살아간 세상은 일제시대, 가난과 억압이 기승을 부리던 시대다.
  그러나 이효석 하면 우리가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메밀꽃 필 무렵」이나 「낙엽을 태우면서」같은 작품이 아니던가? 그리고 이 글들이 심히 아름답고 호사스럽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우리 자신과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그는 우리 같은 범인과 달라 현실 문제에는 오불관언인 채 낭만적, 목가적인 삶을 일관해간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학교의 국어선생님 가운데에는 그의 글을 싫어하고 그의 글이 교과서에 실리는 것조차 싫어하는 분들도 계시다고 한다.
  그러나 어찌 이효석이라고 그 삶이 현실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에 관한 여러 기록들을 살펴보면 그는 그렇게 풍족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가을이 되면 낙엽 냄새를 맡고 물을 데워 목욕을 하고 멀리 떨어진 곳까지 원두커피를 사러 다녀오곤 했다. 평생 가난과 돈에 시달리면서도 왜 그는 길지 않았던 생애 동안 ‘사치스러운’ 삶을 고집했던 것일까?
  삶의 여유를 누리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육체와 물질이 자신의 영혼마저 구속해 버리지 못하도록 자신의 삶을 가능한 한 풍요롭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가 누리던 마음의 사치는 큰돈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었는데도 그가 그처럼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진정 마음의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을은 겨울로 가는 길목이다. 겨울은 다시 봄으로 돌아가 죽음 가운데 생명의 탄생을 약속한다. 그러나 가을은 풍성한 수확 속에서 생명이 소진되고 침묵으로 가는 계절이 찾아올 것을 암시한다.
  한가위를 앞둔 이때는 아름답다. 봄부터 여름까지 번성해 온 생명이 그 절정을 맞이하는 때다. 그러나 동시에 이 절정에서 생명의 풍요로움과 함께 그것의 한계까지 엿보게 하는 때다. 이때 우리는 우리가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을 맛보되 이것이 결코 영원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이 계절은 우리에게 삶을 진짜로 누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해준다.
  우리가 누리는 생명은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되 영원히 누릴 수 없다.
  육체와 물질의 풍요로움도 언젠가는 끝남이 있게 마련이다. 과연 나는 나 자신의 삶을, 생명을 어떻게 풍요롭게 만들어 갈 것인가? 자유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나는 주인공과 유우라가 춤을 추다가 자주 스텝이 엉키는 것을 묘사한 대목을 보며
이효석은 참 독특한 사람이라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그는 피아노를 치고 원두커피를 마시고 버터 바른 빵을 먹고 여자들과 실컷 놀았다.
그리고 35세에 여덟권 분량의 글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
성 소피아 성당 실내에 들어가니, 역사 속의 풍경을 다룬 사진들이 전시되어있는데
그 중에 댄스 풍경을 보여주는 사진도 있다.
그 전날 밤에 중앙대가, 즉 왕년의 키타이스카야 거리를 걷는데 웬 낭만적인 음악소리가 들려
소리를 따라가니 남녀들이 거리 한 모퉁이에서 댄스를 하고 있었다.
그냥 거리였고 이렇다 할 특별한 조명도 없었다.
비록 문화혁명까지 거치고 나서도 댄스의 명맥은 끊기지 않았다.
실낱 같은 명맥이라도 이어지기만 하면 그 전통은 역사의 명목을 지나 새 광장에 나설 수 있다.
이효석의 이국취미, 호사취미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얼마나 또 빈약한 문학적 전통에 시달릴 것이나,
서른다섯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 문학적 수재를 함부로 욕하지 말라.
사람은 절대 평균에 만족해서는 안될지니... ”


방 민 호(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2010-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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